인간이 우주 질서의 주인? 무지가 ‘무질서의 재앙’ 불렀다

웨이크신학원 | w-apse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릴레이 특강] 정일웅 교수의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 <7>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코메니우스의 초상화.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제공

인간성 위기가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교육신학자 헤닝 슈뢰어는 17세기 유럽 지성인들이 데카르트와 베이컨의 철학을 선택한 결과가 인간성 위기를 촉발한 원인이 됐다고 봤다. 교육철학자 클라우스 샬러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다. 힘과 지혜 사이에서 힘을 선택했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코메니우스의 신 중심 사고와 모든 지혜의 배움을 외면하고 이성만을 강조한 베이컨의 지식교육이 야기한 문제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많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비인간화와 생태계 파괴에 따른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도 창조주를 외면한 인간들의 무지에 기인한다. 이런 비판은 일찍이 코메니우스에 의해 제기됐다. 자연에 비이성적으로 개입하거나 자연을 연구한 결과를 남용하는 데서 오는 문제들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런 무지한 탐구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놓인 우주적 질서에서 인간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양산한다. 그 상태에서 인간이 우주적 질서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부작용까지 낳고 말았다.

클라우스 샬러는 데카르트적 사고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신앙을 이성의 심판대 아래 종속시켰으며, 이성을 전제한 학문적 태도가 세상을 더이상 탈출로가 없는 악한 것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무질서에서 탈출할 길을 찾기 위해 코메니우스에게서 새롭게 배워야 한다.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만으로 인류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 아니다. 코메니우스의 교육적 책임을 통해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조직신학자 로흐만 교수도 코메니우스가 제시한 3가지 영역인 자연과 정신, 성경이 조화롭게 연결될 때 현대 자연과학이 낳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가치를 밝히는 과학적 탐구가 이뤄져야 하고 자연과학자들 역시 철저하게 성경을 전제로 연구해야 과학의 비윤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코메니우스의 범 지혜 교육에 근거한 인간성 교육과 관련해 체코의 현대 철학자 얀 파토츠카는 미래 교육의 방향을 코메니우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을 소유한 자들이 피교육자들에게 세계를 이용하는 능력만 길러줄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이웃, 자연에 봉사하고 희생하면서 ‘열린 영혼’을 지닌 자들이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 지식을 끊임없이 주입할 것이 아니라 희생과 화해,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파토츠카는 코메니우스의 교육이 인간성 교육을 위한 ‘하나의 영감’이라고 표현했다. 코메니우스의 학문이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는 이처럼 상당히 크다. 그는 여전히 인류 구원을 위한 온전한 개혁의 선구자다.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희망의 신학자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구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한계에 직면한 21세기 교육과 정치, 교회 또한 17세기의 역사적 인물 코메니우스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확신한다.

로흐만 교수는 코메니우스가 교회의 연합사상을 제시한 종교개혁의 대표자이며, 세계를 개혁하려는 희망의 신학자였다고 평가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의 교육신학자 에른스트 니코 교수 역시 코메니우스를 종말론의 행렬에서 밝은 미래를 여는 희망의 신학자로 불렀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판데어 린데 교수도 코메니우스를 귀환의 신학자로 명명하면서 교육을 통해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줬다고 평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코메니우스대학교 조직신학자 이고르 키시스 교수는 코메니우스야말로 현대 신학의 선구자로 미래를 위한 희망을 제시하는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현대 유럽학자들의 평가를 통해 우리는 코메니우스가 17세기에 박제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인류 구원의 미래를 예견하는 21세기의 인물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유실돼 행방을 알지 못했던 미완성 대작 7권의 제언서가 1935년에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일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코메니우스는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새롭게 배워야 할 21세기 희망의 신학자가 분명하다. 특히 그의 신 중심적 사고와 범 지혜의 교육이야말로 그간 이성 중심 사고와 자유의지의 남용이 빚어낸 폐쇄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독교철학이자 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는 21세기에 이르러 지는 해가 됐고, 코메니우스는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이 됐다.




정일웅 교수





w-apse  

<저작권자 © 웨이크신학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